조선 기록에 적혀 있는 미나모토 요시츠네의 훗카이도 도피
조선 기록에 적혀있는 미나모토 요시츠네의 훗카이도 도피
조선 기록에 적혀있는 미나모토 요시츠네의 훗카이도 도피
"或言。源義經在奧州時。値泰衡之難。僞死而奔蝦夷。民皆敬服。死後建祠。稱南無義經。其土産。曰鹿皮。熊皮。獵虎皮。熬海鼠。膃肭臍。昆布。鰒。혹 전하기를 ‘원의경(源義經 미나모도 노 요시쓰네)이 육오(陸奧)에 있을 때에 태형(泰衡)의 난(難)을 당하여 거짓으로 죽은 체하고 하이로 달아났는데, 백성이 다들 경복(敬服)하였으며, 죽은 뒤에 사당을 세워 남무의경(南無義經)이라 칭한다.’고도 한다. 이곳의 토산물로는 녹비(鹿皮)ㆍ웅비(熊皮)ㆍ엽호피(獵虎皮 엽호는 바다짐승의 이름)ㆍ오해서(熬海鼠 마른 해삼)ㆍ올눌제(膃肭臍 물개의 음경(陰莖))ㆍ곤포(昆布 다시마)ㆍ복(鰒 전복ㆍ일본에서는 복어를 뜻하기도 함)이 있다."
_청장관전서 제65권 / 청령국지 2(蜻蛉國志二) '하이(蝦夷)' 편
미나모토 요시츠네는 훗카이도의 '하이(蝦夷)' 종족의 땅으로 도피하였다.
그 땅은 남북으로 길고, 북쪽으로는 숙신족과 인접하여 있다. 아마도 연해주~사할린 섬에 숙신족이 살았던듯하다.
미나모토 요시츠네는 훗카이도에서 계속 살다가 죽었거나, 사할린으로 건너가고 연해주로 계속해서 갔을수도 있다.
그러나 요시츠네가 과연 그런 여행을 지속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라는 학자들이 설이 다수이다.
그러나 그런 학자들은 보통 믿기 힘든건 치워버리는 경향이 있으니 족히 취하기 어렵고 더욱이 재미도 없다.
징기스칸의 닉네임 '징기스'는 몽골어 퉁구스어로 바다를 뜻하는 '텡기스'라 하는데.
그렇다면 그는 바다에서 온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정말 요시츠네인가.
그러면 키 문제는? 기록에 따르면 징기스칸은 키가 크다는데......
삼국지 위나라의 조조 역시 키가 작아서 최염으로 하여금 흉노 사신을 접견하게하고 자기는 신하들의 반열에 서서
시치미 뚝 뗐는데. 흉노 사신이 최염이 조조가 아니고, 신하들의 반열에 선 조조가 조조임을 알아보았고
이를 알게된 조조는 뒤쫓아가 흉노 사신을 죽였다는데.
정사가 아니라 야사에 전하는 얘기라서 다 믿기는 힘들고, 그런 일로 흉노 사신을 죽였다는 것은 판타지에 가까우나
조조가 신하인체 흉내냈다는 걸 아예 없었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
징기스의 경우에 이를 대입한다면 키 문제는 해결될 수도 있다.
"하이(蝦夷) 일명 획복(獲服)이라 하고 일고견국(日高見國)이라고도 하고 모인국(毛人國)이라고도 부르는데, 일본의 동북 바다 가운데에 있다. 그 땅은 남북으로 길고, 북으로 숙신(肅愼)과 인접하였으며, 험한 산이 많다. 그 남쪽 바닷가의 포구 송전(松前 마쓰마에)은 송전지마수(松前志摩守 마쓰마에 시마노가미)의 성거(城居)이다. 송전에서 육오(陸奧 쓰무)의 진경(津輕 쓰가루)까지 바다로 15리이고, 송전에서 증우야(曾宇夜 소오야[宗谷])까지 3백 80리인데 증우야는 하이 땅의 북쪽 끝이다. 증우야에서 가량부지(加良不止 가라후도[樺太])까지 43리인데, 가량부지는 섬 이름이며 곧 숙신에 속한 땅이다. 남자나 여자나 피발(被髮)하고 문신(文身)하며 사람됨이 용맹하고 남녀가 섞여 살며 부자의 분별이 없다. 겨울에는 굴에서 자고 여름에는 둥우리에 살며, 털가죽을 입고 짐승의 피를 마신다. 키는 6척이며 피발하고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다. 다닐 때에는 발소리가 나지 않고 높은 데에 오르거나 물에서 헤엄칠 때에는 짐승처럼 빠른데 염장(鹽醬)을 먹지 않기 때문이다. 한 말을 들 힘도 없으나 이마에만은 힘이 있어서 짐은 다 이마의 힘을 쓴다. 수명 40~50세를 넘기는 사람이 드문데, 이것은 고기만을 먹고 곡식을 먹지 않기 때문이다.
군장(君長)의 호칭을 사구사윤(沙具沙允)이라 하고 귀릉(鬼菱)이라고도 부르며, 그 나라에는 글자가 없었다. 은혜를 받고서는 잊으나 원수지면 갚으며, 화살을 묶은 머리 속에 감추고 칼을 옷 안에 찬다. 당 나라 현경(顯慶 656~660) 때에 왜사(倭使) 석진수길상(石津守吉祥)을 따라 당 나라에 들어갔다. 경행(景行 B.C. 71~A.D. 130) 때에 군사를 내어 하이를 토벌하매, 하이가 일본의 종나라[奴國]가 되었다. 물고기 기름[魚脂]을 마시는데, 지주(脂酒)라 한다. 활을 쏘면 멀리 가지는 않으나, 쏘면 반드시 짐승을 맞힌다. 또 초오두약(草烏頭藥 초오두는 독초(毒草)의 이름)을 만들어 촉에 발라 사람을 쏘면 피부가 썩어 해지는데, 바삐 피부를 도려내고 날마늘을 갈아 붙이면 곧 살아난다. 부모와 지아비의 상(喪)을 당하면 친속(親屬)이 모여 와서 목도(木刀)로 상을 당한 사람의 머리와 등을 두들겨 살이 다 상하여 터지고 거의 죽게 되어야 그치는데, 이렇게 하는 것을 효행(孝行)으로 여기며, 이것을 조타(弔打)라 한다. 곁에 있던 사람이 얼른 안아서 바다에 던지고 짠물로 씻으면 헌 데가 나으며, 더는 애모(哀慕)하지 않는다. 남이 잘못하여 죽은 사람의 일을 물으면 분노하여 좋아하지 않는데, 물건으로 보상하면 ‘잊어 가는 슬픔을 어찌하여 다시 권하여 비탄(悲歎)하게 하느냐?’ 한다.
蝦夷。一名獲服。亦曰日高見國。又號毛人國。在日本東北海中。其地南北長。北隣肅愼山。多險阻。其南海浦。名松前。卽松前志摩守城居也。自松前。至陸奧州津輕海上十五里。自松前。至曾宇夜。三百八十里。曾宇夜者。其北界也。自曾宇夜。至加良不止。四十三里。加良不止。島名。卽肅愼之所屬也。男女被髮文身。爲人勇悍。男女交居。父子無別。冬則宿穴。夏則居巢。衣毛飮血。身長六尺。被髮髭鬚長垂。行無足音。登高遊水。捷如禽獸。不食塩醬故也。嘗無擧斗之力。惟額有力。荷擔負戴。皆用額力。秊壽能過四五十者稀。是肉食。a259_193b不穀食故也。其爲君長之號。曰沙具沙允。或號鬼菱。國無文字。承恩而忘。見怨則報。箭藏頭髻。刀佩衣中。唐顯慶中。隨倭使石津守吉祥。入唐。景行時。發兵討蝦夷。因爲日本之奴國。飮魚脂。名曰脂酒。射不致遠。然發必中禽獸。又製草烏頭藥。塗簇射人。𦘺膚腐爛。急剝創皮。硏生蒜傅之。乃生。若値父母及夫之喪。親屬來集。以木刀敲喪者之頭背。𦘺背傷破。將死乃止。以爲孝行。謂之弔打。傍人急抱投海。用鹹水滌之。則疵愈而不複哀慕。如有人誤問亡者之事。則忿怒不休。贖之以物。曰將忘之愁。何爲更勸悲歎耶。"_윗 기록의 앞 부분
https://youtu.be/cEKyhkitc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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